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김형석·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기독교, 어디서 희망을 찾을까?
김소영님의 리뷰 · 2020-11-19 오후 11:06:34

두란노 언택트 리뷰단에 선정되어 읽게 된 김형석 교수님의 신간.
교수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쉬운 언어로 잔잔하게 메시지를 전하시는데 여운은 참 오래 간다.
편안하게 읽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된달까? 그것은 아마 체화된 진리에서 나오는 힘 때문일거다.

경험과 연구를 통해 얻은 깨달음도 귀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달은대로 삶을 사는 사람의 가르침은 생명력이 다르구나 생각해본다.

이번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위기에 처한 한국 기독교가 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책인 것 같다. 사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위기라고 말하는 원인은 외형적인 데 있지 않다. 어찌보면 한국 교회 역사상 이만큼이나마 권력을 행사하고, 많은 성도 수를 거느리고(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재정적 풍요를 누린 적은 없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잃었다는 데 있다. 세상보다 더 세상 같아진 외양을 갖추는 동안 예수님의 뜻- 정의와 사랑의 실천-은 교회 안에서 점점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Part1.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이 책의 가장 첫 장인 part1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교회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조명한다.
집에 멀쩡한 가재도구는 없고 쓰레기들과 먼지가 더 많다면 새 가구를 사들이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하듯..
그래서 "회개 할 것이 있으면 숨김없이 용서를 구하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p.19)고 한다.

교수님은 이러한 회개와 혁신에 걸림돌이 권위주의라고 보고, 따라서 권위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기독교의 주인이신 예수님께만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권위를 교회나, 기독교인이 취하려는 것이 권위주의라는 지적이 깊이 와 닿았다.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취하는 것이 모든 죄의 근본이다. 또한, 권위주의와 함께 교리주의를 버리라고 하신다. 교리는 종교의 근간이 되므로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종교의 가르침을 훼방한다면 이 또한 주객전도다. 교리는 종교의 정신을 실천을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 교리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예수님이 가장 강하게 책망하셨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이 했던 행태다. 그만큼 제자리를 벗어나면 위험하기에 권위와 교리가 귀하고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듭 강조하며 경고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Part2.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기독교

2장의 제목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한편 마음이 참 아팠다. 인간다움을 잃은 기독교라니! 한탄스럽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생겨난 기독교가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교수님은 그 원인을 "실천"이 부재한 데서 찾는다. 우리가 기독교의 진리를 믿는 것으로 신앙은 완성되지 않는다. 실천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얘기는 마지막 장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실천은 십자가를 통해서라고 결론 짓는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도록 되어 있다. 주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를 주신다. 그것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십자가이다. 진실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영원한 것을 위해서, 이웃의 행복과 생명을 위해서, 마침내는 이루어져야 할 하늘나라를 위해서.(p.47)"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실천이 참 신앙인의 표지임은 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딜레마는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지기 싫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은 진실이 가려지고, 불의가 가득해지면, 영원을 잃고, 이웃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심장 떨리는 진실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고 당장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수히 많은 나날들을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대체 무얼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떻게 실천하는 것일까? 교수님은 p.87에서 크리스천의 인간다움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첫째, 인간적 성실성과 정직성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과 직분에 성실한가, 나의 죄를 정직하게 보고 있는가. 그것이 성실성과 정직성의 잣대라고 생각되었다. 작은 불순종이 누적되어 어마어마한 죄로 이어지듯, 작은 일에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가 쌓이면 그리스도와 하나된다.

둘째, 이기적인 발상과 행동을 버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의 종교적 행위, 경험치, 지위로 내 신앙을 증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마음 없이도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쌓을 수 있다. 다른 이를 배려하는가, 남의 유익을 위해 나의 편의를 포기하는가, 얼마나 희생과 섬김과 포용의 선택을 하는가, 그것에서 신앙의 참됨이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자기 부인의 길이다. 좁은 길이다. 그러나 그 뼈아픈 선택을 거듭해 나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힌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애와 인간 목적관에 결부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세상적인 가르침, 세상 가치관을 걸러내고, 경계하고, 떠나는 일과 통한다고 느껴졌다. 하나님은 인간을 가장 귀히 여기시고 심지어는 죄인인 인간을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 하지만 세상은 반대로 간다. 사람을 귀히 여기면 세상과 갈등하고 마찰해야 할 때가 많다. 그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다. 이 일을 해내는 것이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증명하는 일이겠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역할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임하고, 나의 유익을 거슬러 섬기고 희생하고, 세상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각자의 구체적인 십자가는 다 다르겠지만 본질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Part3. 민족에 희망을 주는 기독교

교수님은 한국 사회의 큰 문제가 흑백논리적 의식구조라고 지적하신다. 우리가 양극논리와 자기 절대화에 사로잡히는 병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교회가 민족의 병을 치유하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은 믿음이고, 믿음의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질이 이런 현상에 한 몫하고 있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믿음은 교조주의라는 가짜 믿음이지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거다. 믿음은 절대적인 진리를 향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함부로 판단하고 배척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엔 강경파 셀롯당 시몬도 있었고, 세리 마태도 있었고, 평범하고 무식한 어부 베드로도 있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할 것-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진리-은 고수하지 못하고 포용하고 인정해야 할 것을 가차없이 배척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사회가 병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할까? 교수님은 정의는 사랑에 의해 완성된다고 답한다.(p.149) 명답이다. 정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싸구려 눈가림일뿐.. 세상은 옳은 것(정의)을 위해 싸우고 쟁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쟁해야 할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만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최선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남의 틀림을 지적해야 하는데 그만큼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만큼 정의로운 분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의의 잣대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셨다.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정의의 속성 때문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다. 이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요구된고 생각했다. 좋은 게 좋다라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대해야 하지만, 불의를 사랑으로 대하려면 엄청난 대가가 요구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이걸 쓰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누가 그 짐을 지려할 것인가? 예수의 마음을 아는 자, 예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 뿐이다.

Part 4. 예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

앞에서의 흐름에 따라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다루신다. 예수님의 뜻은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시는데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어 적어본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때에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머무는 곳은 사람과의 공간이며 이루어지는 때도 인간과의 시간이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인간이 맺어지는 때와 공간이다. 그 인간 중의 하나가 나 자신인 것이다."(p.187)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익히 들어온 가르침이 새롭게 다가온다. 가정불화라는 어려움을 통해 십자가 지는 삶을 구체적으로 연습하며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정에 임하기 시작했음을 느끼는 요즘이라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나로부터 시작된단 것을 인지하는 것과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은 양심과 도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이다.(p. 198) 인간은 선악의 문제로 인생을 해석할 수 없다. Part3에도 언급되듯 분명 이성과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간다움이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고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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