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밥 한번 먹어요

prologue 2021년 09월호 우리 밥 한번 먹어요 빛과소금

살면서 ‘밥 먹듯이’ 해 온 거짓말이 있습니다. 거짓말까지는 아니고 ‘지키지 못한 말’에 더 가깝지만요. 바로 ‘밥 한번 먹자’는 말.
오가다 우연히 마주친 이와 헤어질 때도, 오랜만에 연결된 통화를 마칠 때도, 일로 만난 사이라도, 정으로 이어진 관계라도 ‘밥 먹자’는 말을 버릇처럼 또는 자동으로 말하곤 합니다. 말해놓고 아차 싶을 때도 있지만, 역시 고쳐지지는 않아요. 왜냐면 그 말은 진심이고, 말하는 순간엔 그 말을 불이행할 의사가 1%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아직’ 안 먹은 거지, ‘영원히’ 안 먹을 건 아니거든요.
헌데, 입으로 발행한 수표가 부도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요. 점심시간에 각자 자리에서 혼밥을 먹는 상황이 2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친구든, 이웃이든, 동료든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었던 것이 까마득한 옛일인 것만 같습니다. ‘밥 한번 먹자’는 말 앞에는 ‘코로나 끝나면’이라는 수식어가 자동 완성되어 버렸습니다. 조금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잃고 나면 보인다고 했던가요. 우리가 함께 먹었던 밥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구성 물질이 아닌, 위로와 격려와 따뜻함이 담긴 마음이었음을.
밥 앞에서 가장 많은 감사 기도를 드렸음을. 밥상을 사이에 두고 가족과 친구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수없이 마주했음을. 밥은 우리에게 수많은 관계를 맺게 해 주고, 갈등을 해결해 주고, 중대한 일들을 성사시켜 주었음을. 그러니 우리는 그저 함께 밥을 먹는 노력만 하면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눈치챈 건가요?
지금까지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속아 주신 분들, 사실 그 말은 ‘보고 싶다’,
‘더 가까워지고 싶다’, ‘사랑하며 살자’의 다른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꼭 다시 밥 한번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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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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