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하는 밥상 장면 여섯

issue 2021년 09월호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하는 밥상 장면 여섯 글 유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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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최고의 애송시 중 하나인 시편 23편은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신뢰와 안도를 이렇게 표현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시인을 위해 무엇을 해 주시는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밥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이라니! 고대 신화에서 신들은 인간의 제물을 받기만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바치는 게 없으면 해코지를 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밥상을 차려 주신다. 우리와 함께하는 밥상을 그리도 좋아하시기에, 밥이 필요 없으신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함께 식사하기를 즐겨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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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역사에서 중대한 기점에는 하나님과의 식사 자리가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후손의 복을 약속받았지만 아들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아브라함과 사라가 마침내 이삭을 낳으리라는 소식을 들은 것은, 마므레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으신 하나님과의 식사 자리에서였다(창 18장).


이집트의 종살이로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모세를 보내 지상의 절대자 바로에게 선언하신다. “내 백성을 내보내거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에게 제물을 드릴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신 ‘제물을 드리는’ 일은 제의를 넘어 사귐과 나눔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궁극의 제사인 화목제(쉘라밈: 온전함을 뜻하는 샬롬의 파생어)는 제물을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기쁨의 잔치로 완성된다. 제의 공동체는 곧 식탁 공동체라는 뜻이다. 마침내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율법을 수여 받고 언약을 맺어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그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경축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찬이었다. 모세와 아론, 백성의 대표 70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신 것이다(출 24:9~11).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시내산은 화염과 연기, 우레와 번개로 두려움을 일게 했지만(출 20:18),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밥상 교제를 위해 당신의 영광을 스스로 해제하시고 그들에게 다가오셨다. 사람이 하나님과 먹고 마신다. 임마누엘의 의미를 이렇게 생생히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 달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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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은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근원적 체험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신 5:6)라고 부르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역시 자신들을 가리켜 유목민의 후예로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받아 약속의 땅에 정착한 자들이라고 고백한다(신 26:5~9). 지금까지도 중동의 이스라엘은 물론 세계에 흩어진 혈통상의 유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후손에게 전수해 주는 장치가 유월절 만찬이다. 출애굽 현장에서 애굽을 떠나는 것을 기념해 가족끼리 나눈 식사가 그 기원인데, 이 만찬에서 특이한 것은 무교병, 즉 효모(이스트)로 부풀리지 않은 생반죽을 구워 식감이 푸석푸석한 맛없는 빵이다. 대를 이어 기념할 최고의 축제일 유월절에 산해진미 음식을 나눠 먹지 않고 맛없는 무교병을 중심으로 한 소박한 식탁을 대하는 것은 이 ‘만찬’의 본질이 음식의 향연이 아니라 기억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식사는 주부가 주관해 부엌에서 만들어 내는 요리 중심의 행사가 아니다. 유월절 식사는 철저히 제의적이며, 남편과 아버지인 가장이 온 가족의 제사장이 되어 집행하는 언약의 예식이다. 아버지는 정해진 절차에 의해 의식을 진행하며 문답 형식으로 자녀들에게 유월절의 의미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신앙을 전수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이어받아 매년 드리는 예식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유월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만 그 참뜻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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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다. 엘리트 종교인들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으셨지만, 하나님 나라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사람들이 멸시하던 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음식 드시기를 즐기셨다. 세리, 창기, 죄인이라 지탄받던 이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자’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예수님의 밥상은 모든 이를 품었다. 그러한 행보는 나기 전부터 준비된 그의 이름과 성령으로 잉태된 신비로운 출생 과정에 예고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주셨던 임마누엘 예언을 이루는 것이 그가 오신 목적이었던 것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1~23). 예수께서 온 이스라엘을 품어 구원하시는 방법은 자신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애굽의 죄를 심판하는 재앙의 정점. 장자의 목숨을 거두는 죽음의 천사들이 피해 가도록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 그 어린 양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유월절이었다. 생애 마지막 유월절,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한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오르실 것을 분명히 하셨다. 또 한 번의 연례행사일 줄 알았던 그 식사는 이별의 만찬, 최후의 만찬이 되었다. 그러나 그 만찬은 재회를 약속하는 만찬이기도 했다.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이 떡이 곧 내 몸이고 이 잔이 내 언약의 피니 앞으로도 나를 기억해 떡과 잔을 나눠 달라 말씀하셨다. 예전이 된 성찬식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식탁은 늘 그분을 기억하는 거룩한 만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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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만나 주셨다. 장소는 갈릴리 해변. 메뉴는 생선구이. 제자들이 준비해 모신 것이 아니라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께서 직접 차린 밥상이다.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불러서 하시고 싶었던 일은 그들의 불신앙을 꾸짖는 정신교육도, 차후의 세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한 전략 회의도 아닌, 소박한 밥상의 교제였다. 그것은 사랑하는 주님을 잃고 낙심했던 제자들의 가슴을 달래는 밥상이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다니…. 낙심과 절망, 두려움으로 쓰라린 그들의 속을 풀어 주려 주님은 밥상을 차려 주신다. 제자들은 지쳐 있었다. 하나님은 지치고 탈진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지으신 뒤 안식의 하루를 보내셨다. 쉬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를 위한 배려였다. 하늘의 일을 하느라 배고픈 줄 모르셨던 주님께서 육신의 제약을 벗으신 후에 생선을 드셔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배고픈 제자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셨다. 그들의 배고픔이 어찌 배고픔 만이었을까. 그 밥상은 그들의 허전함을 채우고 그들을 되살려 주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다. 빌라도 관저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에게도, 스승의 죽음에 허망해하며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던 두 제자에게도, 예수께서 구우신 생선이 건네어졌다. 먹어보렴. 힘을 내. 괜찮아. 이해한다…. 마음의 대화가 이어진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물으신다. “나를 사랑하니?” 세 번이다. 세 번 고통하고 세 번 감격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양을 먹이거라.” 베드로에게 그러했듯이, 오늘도 주님과의 밥상은 우리를 새롭게 하는 생명의 밥상이다. 임마누엘! 

 

 


유선명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다. 저서로는 「잠언의 의 개념 연구」, 「유 목사의 성경 이야기」, 「신ㆍ구약 성서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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