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안의 블루’ 감추지 마세요

prologue 2020년 08월호 ‘그대 안의 블루’ 감추지 마세요 빛과소금

blue[blu:] 형용사
1. 파란, 푸른 
2. 새파래진, 질린
3. 우울한


‘blue’에 ‘우울’이라는 뜻이 담겼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배신감이란! 청춘, 청명, 청년…. 푸름이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맑음의 상징인 줄로만 알았는데, 파랑에 담긴 우울이라는 역설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했습니다. 그렇듯 우울이라는 감정도 일단 뒤통수부터 때리고 찾아오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울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우울에 빠지는 건 배부른 자의 치기일 뿐이라고, 그 정도야 기도의 힘까지 빌릴 것도 없이 의지로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주제넘은 건방을 떨었습니다. 우울증이 무슨 큰 병이나 되냐며 근거 없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우울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몸이 고될지언정 마음만은 풍요롭고 기쁨으로 가득 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매일 어두운 터널에 두려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아프셨습니다. 주위에는 단 한 시간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업고 뾰족구두를 신고 덕수궁이며, 광화문이며, 명동이며 돌아다녔지만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누구’ 엄마의 자리에 서기 전, 어리고 철없던 ‘나’와 제대로 이별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버석버석한 내 마음을 어떻게 돌이키면 좋을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우울은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제 뒤통수를 가격하듯 찾아왔습니다.
극복 스토리는 다른 기회에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히 저는 주님 손을 잡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울증은 소중한 누군가와 아프게 이별할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혹시 우울의 심연에 빠져 있다면 도움을 청하십시오. 주변에 우울하다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그리고 과거 행복했던 때도, 힘든 지금도, 어둠을 통과해 다시 기쁨을 맞이할 그때까지, 한순간도 당신에게 눈을 떼지 않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분 손을 꼭 붙들고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글 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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