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로고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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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 선한 주의 사람

그가 섬기는 세상
선하고 선한 주의 사람윤유선

TV조선의‹엄마가 뭐길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사허당’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현모양처 이미지를 탈태한 윤유선이 이번 달 「빛과소금」 지면에 초대되었다.
선한 말투와 온화한 미소로 ‘착한’ 배우로 널리 알려진 그녀에게 ‘허당’ 엄마라는 매력까지 더하여졌다.
친구 같은 엄마, 어느 때는 아이들보다 더 아이 같은 모습에서 윤유선의 어릴 시절 얼굴을 본다. 6살 때부터 연기자로 살며 여느 아이들 같은 평범한 사춘기를 겪지 못했을 그녀가 어쩌면 지금 그 시기를 아이들과 함께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 실수하고, 때때로 사과하며,
아주 흔하게 깔깔거리는 그 천진한 모습이, 그 순전한 마음이 봄날의 꽃비만큼 감동적이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선 윤유선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취재 서진아 사진 한치문 사진 제공 기아대책

최근 ‘기아대책’과 함께 봉사활동 다녀오셨죠?
어떤 취지로 방문하셨고, 다녀오신 소감을 들려주세요.

몇 년 전부터 기아대책을 통해 후원을 하기 시작했고, 봉사활동으로 필리핀 쓰레기 마을과 아프리카 말라위를 다녀왔어요. 홍보 대사로서는 아니고 그냥 후원자 입장으로 돕고 싶어서 계속 뒤에서 후원하고 있어요. 이번에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맞아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다녀왔어요.
매번 쓰레기 마을을 갔는데, 가는 곳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어요. 필리핀에서는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고, 말라위에 갔을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들이 상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번에 간 마다가스카르는 그중에서도 위생적으로 가장 열악한 것 같았어요. 닭이나 개 같은 가축들이 침대 위에 그대로 올라오고 배설물도 제대로 처리가 안 되고 있더라고요. 정말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가족간의 사랑이 넘치고, 서로 원망을 하거나 탓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무능한 부모나 남편을 탓할 만도 한데 그런 원망이 전혀 없어요. 제가 방문한 가정은 대가족이었는데,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죽을 끓여 먹으면서도 행복해 보였어요. 아기들이 기저귀도, 속옷도 없이 맨 몸으로 다녀도 징징거리지 않고, 어른이나 아이나 심성이 곱고 서로를 많이 아끼더라고요. 그 가족이 오래토록 건강하고 화목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의 어려움을 도우러 갔다가 도리어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깨닫고 왔어요.

 


연기 활동을 여섯 살부터 시작해서 43년이나 되셨어요.
43년간 한길을 걷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굉장한 복이죠. 어렸을 때 좋아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사실 연기가 뭔지도 몰랐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크게 안 했던 것 같아요. 연기한 지 15~20년 정도 되었을 때, 그러니까 20대에 슬럼프가 왔어요. 20대에 연기를 시작하는 친구들은 절실한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당연히 하는 걸로 여겼으니까 열심이 없었어요. 당시 주변에는 저보다 배우로서 좋은 조건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내 스스로 연기에 크게 재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감사할 줄 모르고 20대를 보냈어요.
사실 여배우는 20대에 가장 화려하게 주목받는 직업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때 게을러서 저를 가꾸는 데 소홀했던 것 같아요. 여배우로서의 관리보다는 어렸을 때 친구를 못 사귀어서 그랬는지 뒤늦게 친구들과 노는 게 정말 좋았어요. 지나고 나서 보니까 일적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그때 그 친구들이 지금까지 소중한 친구로 남았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철이 들었죠. 그때부터 좀 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사하는 마음도 생긴 것 같아요. 워낙에 욕심을 내는 성격이 아니라 한 번에 확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야겠다, 나이 들면서 더욱 성숙해지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다른 배우를 돕고 빛내주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 연기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해요. 작은 역할이라도 설레어하면서 열심을 내는 지금의 내 모습에 감사해요.

신앙생활은 어떤 계기로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20대 후반쯤에 나름 힘들었던 시간을 겪었어요. 일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되고, 빨리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 되고. 여섯 살 때부터 줄곧 연기만 해왔는데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이제껏 난 뭘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따라 교회에 가게 되었어요. 가는 날로 드라마틱하게 주님과 딱 인격적 대면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은 설교가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만큼 혼란스럽고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딱히 할 일이 없고, 또 찬양하는 건 좋아서 계속 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순간 설교 말씀이 쏙 들어왔어요. 말씀 하나하나가 나에게 주시는 위로 같았어요. 그 위로가 너무 좋아서 다음주에도 가고, 그 다음주에도 또 갔어요. 나를 데려간 친구가 교회에 빠지면 저 혼자서라도 갔어요.
그렇게 말씀에 의지하면서 교회에 다니다 보니, 목사님이나 다른 성도들에게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말씀이 좋아서, 오직 말씀만 붙들었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어요. 목사님도 시험에 들수 있고, 어느 누구라도 시험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도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 편이에요. 남편과 결혼할 때 신앙이 없는 상태였는데, 남편이 “교회에 데려다는 줄 테니 나한테 믿음은 강요하지 마” 하더라고요. 그건 당연히 제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니까, 강요하지는 않을 테니 같이 가기만 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7년쯤 지났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남편을 보면서 ‘믿음 있는 사람끼리의 결혼이 이래서 중요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낙심되더라고요. 그래도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했고, 지금은 남편도 하나님을 만나서 교회에 잘 다니고 있어요. 남편 왈, 제가 한번도 신앙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다시 깨달았죠. 진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걸.


요즘‹엄마가 뭐길래〉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아이들을 양육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자녀 교육에 특별히 신경 쓰시는 게 있나요?

아이들을 자꾸 비교하다 보면 잘하는 모습보다는 부족한 부분만 보게 되잖아요. 모든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할 수 없는데 모든 부모들이 다 잘하길 바란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또 그걸 강요하면 더더욱 안 되고요. 저희 아들이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학원을 안 다녀요. 굉장히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이라서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저런 학원에 보내 주입식 교육을 시켰다면 아마 튕겨져 나갔을지도 몰라요.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빠릿빠릿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제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더니 아이가 하나하나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게 신기하고 대견하더라고요.
저도 한참 이것저것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어요.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이었는데, 온누리교회에서 학부모 예배가 있었어요. 하신주 선교사님께서 엄마들을 엄청 혼내시더라고요.
그렇게 공부시켜서 아이들에게 뭘 기대하는 거냐고.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들 힘들게 하지 말고 순리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이들이니 하나님께 맡기라고. 어떻게 양육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걱정만 하고 있던 나에게 그때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때 아이를 세상에서 원하는 잣대로 측량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기도로 양육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도 가끔씩 불안해요. 자꾸 왔다 갔다 하고요.
저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도 늘 얘기해요. “아무리 크게 성공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 의미 없다. 잘되도 잘된 게 아니다”라고요.


CGNTV의‹하늘빛 향기〉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계신데요.
편안하고 온화하게 진행하신다는 평가가 자자해요.
프로그램 해오시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은혜를 경험하셨나요?

먼저 MC를 보시던 강석우 선배님께서 저를 추천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바로 받아들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헌신 봉사의 마음도 부족한데, 이렇게 귀한 일을 시켜주셨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시간의 십일조를 한다는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일하는 것의 한 부분을 드릴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했어요. 요즘은 재능 있는 전문 MC분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에 비하면 제 진행은 턱없이 부족하고 서툴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임하자 싶었죠. 근데 요즘은‹하늘빛 향기〉가 제 신앙을 지켜주는 존재가 된 것 같아요. 수많은 귀한 분들의 일대일 신앙 간증을 들으면서 제 신앙도 같이 단단해져 감을 느껴요.
특히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곤 해요. 최근에 아마존에서 사역하다 돌아가신 허운석 선교사님의 남편 김철기 선교사님이 출연하셨어요. 척박한 아마존에서 인디오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암에 걸려 소천한 아내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데 마무리를 못할 정도로 울컥했어요. 그리고 내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나, 신앙인으로서 잘 살아가고 있나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건축 회사 팀하스의 하형록 회장님도 기억이 나요. 「P31」이라는 책을 쓰신 목사님이시기도 하죠. 지금은 건축으로 큰 성공을 거두셔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역을 많이 하시는데, 어릴 때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서 나환자촌에 들어가 살며 다른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던 일은 꽤 충격적인 유년의 기억이었다고 해요. 그래도 그때의 훈련으로 이후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당할 때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형록 목사님 역시 무의식적으로 나환자촌에서 섬기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해요. 아버지께 최고의 유산을 받은 것이죠. 그 목사님은 세상적 성공을 이루신 분이지만, 그것보다 더 귀하고 값진 인생의 행복을 누리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일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잘 되도 안 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안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내와 어머니로, 연기자로,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신지요.
이제는 아이들을 독립시키는 훈련을 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솔직히 섭섭한 마음 반, 기대하는 마음 반이에요. 어릴 때는 키우는 데 손이 많이 가니까 아이들이 너무 예쁘긴 해도 마음에 살짝 부담이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아이들은 클수록 더 예쁘다고 한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거 같아요. 정말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더 사랑스럽고, 더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말도 잘 통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점점 더 좋아지다가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독립할 때 섭섭한 마음이 너무 클 것 같아서 조금 두렵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부터 조금씩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저 스스로로 떠나보내는 훈련을 하고, 아이들에게도 조금씩 인식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나 역시 새로운 일들을 찾아야 하겠죠. 아이들도 예쁘고, 일도 너무 좋지만 아무것도 우상 삼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이게 없으면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기도하고 있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받은 마음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뭐든 할 생각이 있어요. 그동안 제가 받은 것들을 선하게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일로서는 새로운 드라마 준비 중에 있고요. 연극에도 도전해 보려고 해요. 드라마든 연극이든 영화든 모두 다른 매력과 장점이 있지만, 꾸준히 훈련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연극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도 제목이 하나 있어요. OCN에서 기획하는‹구해줘〉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사이비 종교 단체에 저항하는 내용을 다룬 거예요. 아직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주변에서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대적할 상대들도 있을 것 같고, 방해 세력도 있을 수 있고요. 그 드라마가 사회에 올바른 영향력을 끼치고, 사이비 종교로부터 피해 입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회복되는 선한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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