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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복싱 선수가 꿈인데 아빠가 반대하세요.
노리터 | 2019년 01월호
  • 꿈에 대해 기도하면서 고민하는 친구를 응원합니다. 친구와 톡으로 몇 가지 대화를 하고 나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 하나님 안에서 자라나는 친구들이 어떤 비전을 키워나가야 할까?
    2. 세상에서 합법적인 복싱 등의 스포츠가 성경적인 관점에서 폭력적일까?

     차근차근 같이 생각해보기로 해요.
     우선, 첫 번째로 ‘비전’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눠볼까요? 비전은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꿈꾸는 거죠? 많은 친구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꿈보다는 나만을 위한 꿈을 생각하기 쉬운데, 친구는 험한 세상(?)에서 자기방어능력도 필요하다 생각하고, 또 그 일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하니 정말 멋지네요. 거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꿈도 꾸고 있어서 더없이 멋져 보여요. 친구의 생각처럼 비전은 ‘목적’이 가장 중요해요.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고자 하는지가 바르고 명확해야 하죠.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법도 중요해요. 아무리 거액의 헌금을 해도 그것이 불법적인 돈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도 ‘복싱’이 방법적인 면에서 옳은지를 고민하는 것이겠고요.
     그럼, 두 번째로 복싱을 보는 성경적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해요. 복싱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옳으냐 아니냐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폭력적이라고 보는 시각 때문이겠죠? 정말 복싱은 폭력적인 스포츠일까요? 이것에 대해 맞다, 아니다를 단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예요. 폭력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을 말하는데 이 말대로라면 복싱은 분명 폭력적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일정한 규칙과 스포츠맨십을 바탕으로 감정적인 폭력이 아닌 선의의 경쟁을 하는 행위이니까요. 복싱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서로 다른 만큼 권투를 폭력적으로 여기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즐기는 사람을 정죄할 수 없어요.

     다만 이것은 알아야 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버린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삶에서는 모든 것에 폭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자신의 심리적, 물질적 평화를 위해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저주하는 것을 비롯해 언어나 글로도 폭력을 가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죠. 어쩌면 이렇게 규칙 없이 마음에게 행하는 폭력들이 규칙이 있는 복싱보다 더 폭력적일 수 있어요. 실제로 성경적으로 보이는 일도 얼마든지 폭력적이고 비성경적인 행위들이 될 수 있죠. 자칫 이 말을 복싱에 대해 자유함을 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것은 복싱 자체가 성경적이냐 아니냐보다 ‘나의 동기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는 거예요. 바로 그런 점을 깊이,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친구가 하나님의 뜻을 구했으면 좋겠어요.
     자, 그럼 이 문제로 생긴 아버지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 나눠볼까요? 친구와 대화를 하고 제 주위의 부모님들께 *‘자녀가 복싱선수가 되려고 한다면, 허락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져 봤어요.(첨부파일) 그랬더니 70% 가량이 ‘허락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셨어요. 취미활동이 아닌 선수활동을 시작할 경우 폭행에 항상 노출된다는 점이 아마도 마음에 걸리셨을 거예요. 

     친구의 아버지 역시 ‘폭력적’이라는 부분에서 깊이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또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반대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친구도, 친구의 아버지도 복싱에 대한 여러 가지 면들을 모두 생각해보면서 함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그러고 나서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터놓고 나눠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성장하다 보면 꿈이 바뀔 수도 있어요. 하지만 친구의 지금 마음처럼 모든 비전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한 수단임을 기억하기 바랄게요.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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