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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방언 기도는 왜 하는 것이고,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교수님 궁금해요> | 2018년 10월호
  • Q. 저는 중학교 1학년 sena 독자입니다! 이번에 교회 수련회를 다녀왔는데요. 수련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한국말로 기도하는 저와 달리 선생님과 전도사님, 목사님께서는 방언을 사용해서 기도를 하시더라고요. 방언을 사용하면 기도가 더 잘되는 건가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건지를 모르겠어요.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왜 하는 건지,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해요.

     

    A. 수련회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주위 사람들을 목격했군요?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거나 겁을 먹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해 준 친구가 참 고마워요.

     

     방언이란, 성도들이 깊이 기도를 할 때 성령님이 주시는 특별한 언어이자 은사를 뜻해요. 성경에도 방언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이 있다고 해요.
     우선, 사도행전 2장 1-13절의 사건에 등장하는 방언은 ‘외국어’, 즉 다른 지역의 언어를 말하는 형식으로 나타났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명령하셨어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12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죠. 그때는 마침 오순절이라는 절기였어요. ‘오순’이라는 말에서 ‘오’는 ‘다섯’을 뜻하고, ‘순’은 ‘열’을 뜻해요. 그러니까 오순절은 팔레스타인의 농사법 주기에 따라 5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는 절기예요. 유대 사람들은 유월절 무렵에 씨를 뿌려서 오순절에 첫 열매를 거두기 때문에 그날을 ‘초실절’(첫 열매를 거두는 절기)이라고도 불렀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그리고는 부활하셔서 다시 하나님께로 가셨고, 그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성령을 통해 다시 사람들 안에 찾아오셨죠.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을 첫 열매로 거두신 거예요.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요. 오순절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다락방을 가득 채웠고(행 2:1),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모든 제자들 위에 임했어요(행 2:2). ‘불’은 성령을 상징하고 ‘혀’는 언어를 상징해요. 즉, 성령의 능력이 언어와 관련해 임했다는 뜻이에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각자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언어는 그들이 한 번도 배워 본 일이 없는 외국어였어요(행 2:4). 사도행전 2장 8절은 이 다른 언어 곧, 외국어를 ‘방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제자들은 각각 다른 언어로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 곧, ‘구원의 복음’을 말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외국어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에는 오순절 절기가 되면 로마 제국에 속한 수많은 식민지 나라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믿는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어요. 사도행전 2장 9-10절에는 15개 지역이 등장하는데, 이 지역들은 당시 팔레스타인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온 세상을 뜻했어요. 온 세상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들어 온 이방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 있으니 이때가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제자들이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외국어로 복음을 전하는 기적을 베푸신 거예요. 더욱 놀라운 일은 15개 나라 말로 동시에 복음을 전하면 소리가 뒤섞여서 크게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텐데도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지역 말을 골라서 알아듣는 기적이 연달아 나타났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외국어 형식의 방언이 나타난 기록은 그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어요. 즉, 이런 방언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것이죠.  

     

     성경이 말하는 또 하나의 방언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등장해요. 이 방언은 외국어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언어예요. 우리 친구에게도 무언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분명히 있는데 마음을 표현할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했던 때가 분명 있었을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기도를 깊이 하다 보면 마음속에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할 내용은 많은데 언어의 한계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특별한 언어를 선물로 주셔서 우리가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을 막힘없이 자유롭게 표현하며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때가 있어요. 이 언어는 하나님만이 알아들으실 수 있는 언어이고, 또 각 사람마다 달라요. 이것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말하는 방언이에요.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언어로 기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방언을 신비하게 여기곤 했죠. 그래서 바울은 이 방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몇 가지 주의를 주고 있어요.
     첫째, 방언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용해야 해요. 고린도전서 14장 2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맞아요. 방언은 방언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유익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일부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많은 성도가 모인 공적인 예배 자리에서 대표기도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대표기도는 예배에 모인 사람들을 대표해서 기도를 드리는 것인데, 정작 사람들이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한마음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겠어요? 절대로 그럴 수 없죠.
     둘째, 방언을 받은 사람은 무언가 신령한 은사를 받은 것처럼 영적으로 교만해질 수 있어요. 영적인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방언은 수많은 은사 중 하나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친구가 방언을 받게 된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사용해야 해요.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큰 소리로 드러나게 하는 것보다 개인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과 1:1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때 하는 것이 좋고,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을 마치 하나님께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받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돼요.  

     

     그렇다면, 이런 방언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방언은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어요.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니까요. 그러므로 우리 친구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싶다면, 그 은사를 선물로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기억할 것이 있어요. 방언을 받고자 하는 마음 안에 사람들을 의식하거나 신앙적으로 우월하게 보이고 싶은 의도가 있지는 않은지 꼭 점검해야 하죠.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바른 기도라 할 수 없어요.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방언을 받기 위해서 연습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예요. 특정한 단어를 반복해서 주문을 외우듯이 암송하면 방언이 터진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런 주장은 아주 잘못된 것이고, 이렇게 얻은 것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아니에요. 그것은 특정한 단어를 많이 말하다가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물리적 현상에 지나지 않아요.  

     

     이제 마무리할게요. 방언은 우리와 소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에요. 우리 친구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얼마든지 주시는 선물이죠. 저도 방언을 통해서 친구가 풍성한 기도생활을 누리기를 바랄게요. 그렇지만, 은사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진심 어린 마음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바랄게요.

     

    글│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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