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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목회자의 자녀’라는 수식어가 부담으로 느껴져요
노리터 | 2021년 01월호
  • * 상담 메세지 내용입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시라고요?

     

    네. 지금 작은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으로 목회 중이세요.

     

    교회에서 맡고 있는 것들이 많은가요?

     

    아무래도 작은 교회이다 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중고등부가 된 현재까지 성가대, 찬양단, 임원 활동 등을 항상 해왔고요. 이제껏 살면서 주일 예배에 빠진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교회에서는 친구가 정말 큰 힘이 되는 일꾼이겠어요.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제까지 해오던 것들이 요즘에는 너무 벅차다고 느껴지고 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음. 제가 이제까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해온 일들이 진정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닌 항상 제게 따라다니던 ‘**목사님 자녀’라는 수식어 때문에 해온 것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두렵더라고요. 

     

    친구의 신앙 활동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하는 것인지는 친구가 더 잘 알 텐데요? 

     

    그렇죠. 진심으로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또 그러고 싶은데요. 막상 교회에서 기도하거나 찬양을 할 때는 보여지는 것을 의식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돼요.  

     

    혹시 친구의 이런 상태를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았나요?

     

    아뇨. 어릴 때는 목회자의 자녀인 만큼 신앙적인 고민이 생기면 바로 아빠에게 가서 고민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지금은 이런 고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나이가 됐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답을 찾아야 저도 성장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혼자 고민을 하다가 sena를 통해서 조금은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보내 봤어요. 

     

     

    그렇군요. 아마 목사님이신 아버지도 친구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말씀은 안 하시지만 항상 관심을 가지고 계실 거예요. 저처럼요^^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희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

     

    친구가 보내준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목사님의 딸로 책임감을 갖고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친구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줘야겠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난 한 해 고3 수험생으로 참 힘들었겠다고 위로도 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친구가 마음을 담아 보내준 글을 반복해서 읽어봤어요. 한 서른 번은 읽은 것 같아요. 읽고 또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떻게 친구를 도와줄까’라는 생각이 ‘수능 마치고 직접 만나서 따뜻한 차 한잔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큰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격려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요. 그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저의 마음을 나눠볼게요.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싫지만,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이 말의 의미에는 동의해요.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만드실 때 아담과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연합해 행복한 공동체,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하셨죠. 그런데 그런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해요. 타인을 존중해야 하고,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죠. 그렇지만 사람이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끊임없는 경험들을 통해서 배워가는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 가지를 배우는 거예요. 첫째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히 알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 둘째는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건강하게 포기할 줄 아는 법, 셋째는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을 건강하게 선택하는 법이에요. 이런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탑재가 되느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내게 필요한 것을 표현하기는커녕 그게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죠. 영어공부와 비슷해요.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지만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문이 턱 막혀버리는 것처럼요. 그건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래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장의 시험이 목적이 되어서 그런 거죠.(제 이야기입니다^^;;) 

     

    내 안의 기준들

    질문을 해볼게요. “크리스천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학생은 어때야 해요?”, “크리스천 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때야 하죠? 특히 고3이라면요?”, “목사님의 자녀는 교회에서 어때야 해요?” 아마 떠오르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친구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을 통해 갖게 된 기준들이에요. 아마도 다른 사람의 행동, 누군가의 가르침, 주위의 시선과 기대 등 아주 다양한 요인들을 통해 이 기준들이 친구 안에 세워졌을 거예요. 그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한데요. 각자 가지고 있는 기준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사회 속에서 아까 말한 세 가지를 건강하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해요.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싫어도 해야 할 일,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될 일을 건강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가 뭘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안에 세워진 기준에 억눌리게 되기도 해요. 어떤 사람은 기준이 너무 높아 힘겨워하거나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아 두려워하고 때로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실망하기도 하죠. 만약 기준이 적절하다면 도전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겠지만 기준이 너무 높거나 왜곡되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본연의 나’로 살지 못하고 ‘타인이 원하는 나’로 살게 될 수 있어요. 

     

    나를 알아가는 시간

    친구의 경우는 어떤가요? 아마도 ‘나는 누군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이 계속되는 시기에 ‘목사님의 딸’, ‘크리스천 청소년’이라는 여러 역할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괴롭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제는 ‘누군가가 바라고 기대하는 나’가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니까요. 그런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하라고 정답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단서를 주고 싶어요. ‘○○목사님의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라는 나의 정체성을 깊이 생각해보라고요. 하나님은 친구를 누구의 딸, 혹은 어떤 크리스천으로 부르신 게 아니라 친구 자체를 사랑하셔서 자녀로 부르셨어요. 그러니 주어진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부담스럽겠지만, 그 속에서 꿋꿋하게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아빠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진심 없는 것들이었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죠? 그런 시간이 있기에 훗날 진정한 섬김의 기쁨과 자유를 더 제대로 느끼게 될 테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결국에는 자유하게 될 친구를 응원합니다. 입시 중이지만 여유가 있다면 친구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저와 한번 만나주세요.^^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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