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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사소년" 천종호 판사
부산지방법원 천종호 판사 | 2020년 10월호
  •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판사의 이 단호한 한마디가 판결을 받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말일까. 그러나 결국 이 말이 그를 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믿기에 ‘호통 판사’ 천종호 판사는 철저한 징계와 동시에 따뜻한 당부와 격려를 던진다. 지금은 청소년 법정을 떠나게 되었지만 아직도 세상만사 모든 관심이 청소년에게 쏠려 있는 ‘만사소년’ 천종호 판사. 그를 만나러 부산지방법원을 찾았다. 

    * 본 기사는 천종호 판사의 강연 및 간증과 직접 인터뷰를 재구성하여 작성했습니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정화영 기자 

     

     

    Part 1. 단칸방의 아홉 식구

     

    부산의 가난한 마을 까치고개. 중학생 종호는 위로는 누님 셋, 아래로는 남동생 셋,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단칸방에서 살았다. 비좁은 방 한 칸에서 무려 아홉 명이 먹고 자며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현실. 공부는 사치일 뿐,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빨리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돕는 것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이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마음속에 작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법조인이 되는 꿈. 

     부모님의 은근한 반대가 느껴졌지만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하루하루가 고된 가족의 일상 속에서 공부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제를 해놓고 집안일을 도운 뒤 가족 모두 잠든 새벽에 방 한쪽 구석에서 밤을 새워 남은 공부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힘겨운 나날이지만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니까! 그런데 그의 꿈이 다시 한 번 난관에 부딪쳤다. 안 그래도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지방 대학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던 그에게 주위 어른들이 교대나 사범대로 진학해 교사가 되어 빨리 집안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일리가 있고 그래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선뜻 그 길이 내키지 않았다. 그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면할 수 없는 말들에 고민에 고민이 시작됐지만,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꿈을 따라 ‘법대’를 선택했다. 

     

     법대에 들어가면 바로 사법시험에 패스해 법조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다시 한 번 공부할 여유도, 책을 살 돈도 없어 할 수 없이 군입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제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도 현실은 그대로였다. ‘법대를 선택한 것이 잘못한 것 아니었을까’, ‘다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집안에 틀어박혀 자책하기를 6개월. 그는 다시 한 번 해보자는 결심으로 무작정 집을 나와 아는 선배의 자취방에 얹혀살며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결과는 4년 만에 합격! 그렇게 꿈에 그리던 판사가 되었다.

     


    Part 2. ‘호통 판사’가 탄생하다

     

    판사가 된 후에도 빨리 변호사 개업을 해서 가난한 부모님과 형제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세계로 그를 초대하셨다. ‘창원지법 소년재판부 판사’. 

    소년재판을 꿈꿔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약자 중의 약자인 청소년들을 섬기는 자리로 강제 배정을 받았고, 지금은 소년재판의 아이콘이자, 모두가 존경하는 ‘호통판사’가 됐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서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재판을 하면 할수록 청소년 시절에 여러 결핍으로 힘들었던 저와 제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중학교 동창인 한 친구는 유명한 폭력조직에 가담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지금 목포 교도소에서 25년째 수감 중인데요. 그 아이와 제 인생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죠.”

     

     ​하나님은 그에게 조금씩 청소년의 영혼을 보게 하셨다. 범죄를 저지르고 비행을 일삼는 행동 이면에 사랑이 결핍되고 상처를 받아 뛰쳐나올 수밖에 없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뒤에 어그러지고 깨어진 그들의 가정이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한 명당 평균 3분 남짓인 그 짧은 재판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아이와 그 가족을 향해 외치기를 선택했다.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왜 아이를 이렇게 방치했습니까!” 그래서 그의 법정에서는 청소년에게 가장 강력한 처분인 10호 판결이 단호히 선고됨과 동시에 학생과 그 부모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풍경이 종종 펼쳐진다. 그게 다가 아니다. 법정에서는 ‘호통 판사’였던 그가 법정 밖에서는 갈 곳 없는 위기 청소년의 그룹홈을 만들어 매주 축구하고 밥 먹으며 아이들을 보호하는 ‘만사소년 천종호’로 변신한다. 어떤 사람들은 ‘판결만 하면 되지 왜 소년재판에 이렇게 애를 쓰느냐’, ‘왜 그렇게 비행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쓰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판사라는 권위를 주시고 청소년 판결을 맡기신 이유라고 믿는다. 죄는 단호히 처벌하되 사람은 살리는 것, 그것이 그를 판사로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제 쓴소리를 막말이라고 생각했다면 저는 벌써 판사 옷을 벗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아이들이 다시 비행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지금까지 판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게 참 감사한 일이죠.”

     

     

    Part 3. 선, 정의, 법을 고민하다

     

    얼마 전, 그는 오랫동안 일해 왔던 청소년 법정을 떠났다. 마음에 아쉬움이 남지만 오랫동안 과제로 남겨져 있던 청소년법 문제 하나를 끝내 해결하고 나온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하다고. 판사로서 거창한 꿈은 없지만, 다음 세대 아이들과 청년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자기가 가진 역량을 모두 사용하고 싶다는 그는 오랫동안 판사로서 고민하던 ‘선, 정의, 법’의 문제를 하나님 안에서 찾아 그가 깨달은 것들을 책으로 만들었다. (110page 을 참고하세요.)

     

     ​“사실 법학에서는 선을 가르치지 않아요. 지금 우리나라의 법 체계는 일본의 체계를 받아들인 결과물이고, 일본은 독일과 프랑스의 법 체계를 받아들였거든요. 안타깝게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인본주의적인 시각이 커요. 즉, 법을 해석할 때 ‘무엇이 공동체 전체를 위해 선한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느냐’를 중심으로 생각해요. 사실, ‘무엇이 선이냐’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에는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께로 도달하게 되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낙태의 문제나 간통죄, 부부가 갈라서는 문제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질서 안에서 하나 되는 쪽으로 결론을 내야 해요. 하지만 지금의 법은 그렇지 않아요. 공동의 선과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개인의 권리, 개개인의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선과 정의가 무너져 있죠. 크리스천은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해요. 지금의 법률 안에는 하나님의 선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정하신 선과 원칙을 잘 지켜야 하죠. 그런 면에서 저도 법관의 양심과 신앙인의 양심이 부딪치는 일들을 많이 겪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자세는 옳지 않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원칙을 두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알도록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해요. 그것이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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