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살다

이진희· 광야를 살다
인생은 광야다
이태훈님의 리뷰 · 2019-10-02 오후 7:09:20
광야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신의 삶이 광야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광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광야의 삶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광야를 물리적 실체로 접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일부러 광야를 찾아가지 않는 이상, 광야라는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살아보지 않는 이상 광야에서의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이구나 하고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광야라고 하면 막연히 황폐한 곳, 사막이 펼쳐져 있고 바위와 돌만 가득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 바람이 불면 뿌연 흙먼지가 공간을 점령해버리는 곳. 사람이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이고 사람이라면 결코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막아주고 보호해주지 않으면 결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곳이다.

성지순례를 가서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를 체험해 볼 순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실제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모세의 광야 40년, 다윗의 광야 13년 삶은 온전히 몸으로 살아내고 버텨낸 기적 같은 삶이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다.

광야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 버려진 것 같은 장소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 같은 삶을 살더라도 우리는 높으신 하나님을 뜻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진희 목사님의 책 “광야를 살다”는 그렇게 광야에서 삶을 버텨낸 성경 인물들을 조망하며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면 눈물 없는 삶이 없고, 광야 아닌 삶이 없기에 우리는 이 책을 쉽게 외면하지 못한다. 책이 눈이 들어온 이상, ‘광야’라는 단어가 두 눈에 포착된 이상, 우리는 이 책을, 광야의 삶을 견디고 버텨낸 것처럼 읽어낼 수밖에 없다.

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에서 13년의 삶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을까, 왜 모세는 왕자의 신분에서 살인자로 전락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양치기로 살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을까. 그들의 삶에서 광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 역시 50년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광야의 삶을 살아왔다. 그랬기에, 아직도 그 광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얼른 읽고 싶었다. 

저자 이진희 목사는 평소에 성경을 읽으며 잘 감지하지 못했던 독특한 광야적 시선으로 우리를 말씀의 세계로 이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하갈의 광야 생활에 관한 이해다. 현재 종교적 대척점에 서 있는 이슬람의 선조가 되는 이스마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광야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눈물과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친히 천사를 보내신 사건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자신이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죽을 것만 같다고 생각된다면, 하루하루 삶에 감사가 없고 불평만 가득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기 바란다. 성경에서 광야적 삶을 산 13명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광야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이진희 목사님의 글을 통해 이야기 한다.

가인의 광야부터 아브라함의 광야, 하갈의 광야, 요셉의 광야, 모세의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룻과 나오미의 광야, 다윗의 광야, 엘리야의 광야, 포로기의 광야, 세례자 요한의 광야, 예수님의 광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약시대의 바울의 광야까지.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나 사도로 부르심을 받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13년간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 책은 광야의 삶이 절망의 삶이 아니라, 희망의 삶이고 연단의 삶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식적이고 문언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제 광야의 삶을 살았던 성경속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광야의 축복을 발견하게 해 준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말한다.

어떤 광야를 지나든 광야는 다 어렵다.
쉬운 광야 같은 것은 없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광야를 지나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런데도 언제나 처음 지나는 것처럼 어렵고 두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의 광야다. (서문, 11쪽)

“광야” 찬양을 부르는 버스킹 동영상을 봤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직 주님만이 내 도움이 되신다’는 고백하는 장면이 계속 눈가에 아른거린다. 

다윗이 광야의 동굴로 피해다니며 ‘주님만이 내 방패, 내 산성’이라는 고백과 찬양이 바로 이 찬양이 아닐까. 광야에서의 삶은 우리를 오직 주님에게만 의지하게 만든다. 우리는 광야를 벗어나는 순간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지하거나 돈을 의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는 우리에게 힘든 곳이면서도 사실은 축복의 장소다. 광야는 믿음의 장소다. 결코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광야의 삶을 불순종의 결과요,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는 시각으로 접근할 때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은 오히려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살다 보면 나오미와 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징벌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79)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광야’가 어떻게 ‘구원’과 연결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사야 62장 4절의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을 책을 통해 다시 읽으며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보다 명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광야를 지나온 우리는 그 곳이 이제는 예수님과 결혼한 것처럼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다시는 황무지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광야에서 살고 있는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가 광야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잎사귀와 나뭇가지들을 버려야 한다. 탐욕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자신을 비워야 한다. 최소한으로 살아야 한다. 낮춰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광야를 통과할 수 있다. (151)

쉬운 광야는 없다. 그러나 축복의 광야다. 다윗은 광야에서 동굴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요새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동굴이 되어 주셨고 그의 요새가 되어 주셨다. 다윗이 피해 숨었던 곳인 동굴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하나님이다. 그것은 광야의 삶을 살 때만 가능하다. 

그는 요새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요새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실제적으로 다윗이 피해 숨었던 곳은 마사다(요새)가 아니라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그는 요새에 숨지 않고 하나님에게 피해 숨었다.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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