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실패하자 ‘대안의 삶’ 찾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2년간 사라졌던 밀리언셀러가 네 종이나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2000년대 출판시장은 화려하게 시작됐다.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어린이들을 책벌레로 만든 ‘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곧 사그라질 것 같던 종이책이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0년 당시 국내에서만 300만 부가 팔린 이 시리즈 외에도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을 크게 뒤바꿔 놓은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 130만 부), 눈물겨운 부성애를 다룬 『가시고기』(조창인, 105만 부), 돈과 부자라는 말을 공론화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 100만 부) 등도 2000년에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허망하게 꺼져버린 자기계발서 열풍
1989년 현실사회주의가 사실상 붕괴된 뒤, 1990년대에 이 땅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은 개인이었다. 대중은 국가-역사-민족 같은 ‘거대담론’을 포기하고 ‘작고 사소한 일상’을 즐겼다. IMF사태로 돈이 없으면 나라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개인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래서 2000년대 서두를 개인주의라는 ‘무의식의 너울거림’을 한껏 드러내며 출발한 것이다. 네 종의 밀리언셀러 어느 한 자락에도 우리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나 아니면 가족에 대한 헌신만을 갈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2000년대에 독자의 관심은 언제나 ‘나’였다. 그들은 한때 ‘성공’을 꿈꾸었다. 벤처 열풍과 함께 남보다 반걸음만 앞서가도 물질적 성공을 쉽게 이룰 것으로 보았다. 처음에는 미국발 자기계발서의 속삭임을 듣고 자신을 조금만 변화시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가 권유하는 것처럼, 돈과 부자에 대한 생각만 바꾸어도 가능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저자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지만, 무수한 개인의 주머니는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대중은 디지털 혁명의 파고를 타고 어떻게든 성공해보려고 안달했지만, 성공의 열매는 극히 소수에게만 돌아갔다. 대중의 자신감은 2000년대 내내 추락하기만 했다. 2006년에는 ‘성공’을 포기하고 ‘행복’으로 코드를 바꿨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풍요로울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신빈곤층working poor은 늘어만 갔다. 한 해에 석․박사가 8만 명 이상 배출되는 고학력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에는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있다. 연봉 990만 원 미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7만 명(전체 비정규직은 13만 5000명)이나 되지만, 정규직 교수는 6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차별화가 심각해졌다. 더구나 2년만 일하면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는 비정규직법 보호법이 오히려 악용되어 2년이 되기 전에 직장에서 떨려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자 대중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공을 포기하고, 부족하더라도 자기만족을 찾고자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세 번의 자살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난 여주인공은 남자 사형수를 면회하러 가는 일주일 가운데 세 시간, 목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의 ‘제한’된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여긴다. 이렇듯 개인은 자신의 꿈을 최대한 줄여서라도 자신의 행복감을 느끼면서 희망을 애써 찾고자 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도를 더해갔다. 미디어가 증폭하는 불안감은 하나의 ‘국가’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 영악해져야만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은 일과 개인생활에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성향을 띄어갔다. 그들은 돈과 성공, 건강이라는 생활 관련 장르부터 철학과 고전 등 문학 장르에 이르기까지 기본을 알려주는 기초적 책 찾기에 열을 올리며 ‘현명한 삶’을 추구했다. 개인은 그것을 만병통치약(솔루션)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다.

‘자기 치유’에서 ‘소통’으로
2008년 가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인의 삶을 더욱 처절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 인생설계를 세우기는커녕 생존하기도 버거워진 사람들은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치유self-healing’ 열풍에 빠져들었다. 응원 받고 위로받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얼마나 단절하며 살았는가를 말해주는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창비)가 나타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통에 빠진 것이 어디 가족뿐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역, 세대, 언론, 학교 등 어디서나 말이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말만 넘쳤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9년에 개인은 소통의 꿈을 꾸었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가족 단위의 소통을 꿈꾸었다면 『도가니』(공지영, 창비)를 통해서는 스크럼을 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공권력과의 소통을 꿈꾸었다. 다양화하는 심리학서적을 통해 자신과 소통을 추구하고, 『여보, 나좀 도와줘』(새터)나 『성공과 좌절』(학고재) 등을 통해서는 ‘노무현의 진실’과 소통하고자 했다. 타자와의 소통을 위해 글쓰기와 읽기에 대한 책을 열렬히 찾았다.

세상이 험악할 때마다 문학의 이야기성이 주목받았던 것은 2009년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베스트셀러 50위권에는 소설과 에세이가 2/3나 차지했다. 2008년만 해도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활개를 치던 자기계발서류는 불과 8종에 불과할 정도로 완전 추락했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 시장 전반의 활성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소설에는 신경숙, 공지영, 김진명(『천년의 금서』), 김별아(『미실』),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등 해마다 시장을 주도하던 인기작가의 책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식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로 『미실』이 팔려나간 것이 그나마 의외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외국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문학동네),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세계사) 등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일색이었다.

에세이로는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 이외수의 『청춘불패』,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헤르메스미디어) 등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책들로 2008년의 자기치유 열풍을 이어갔다.

2010년 화두는 ‘대안의 삶’ 될 듯
2009년 대중은 진정 소통을 꿈꾸었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사람들은 현실의 삶에 대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하반기 들어 ‘대안의 삶’을 다룬 책들의 출간이 부쩍 늘었다. 아마도 2010년 출판시장의 화두는 ‘대안의 삶’이 될듯하다.

<시사IN> 제119호 별책부록 <시사IN> 선정 ‘올해의 책’ 『2009 행복한 책꽂이』